안녕하세요. 최근 성범죄에 관한 법원의 재판과 관련한 내용을 보면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은 상해가 되는가?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성적인 불평등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감수성을 말하며, 단순히 신체적인 성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인 성으로서 젠더(gender)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참고로 신체적인 성은 섹스(sex)를 의미합니다.

 

양성의 불평등 속에서 발생하는 강한 성이 약한 성을 억압하고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강제하여 성적 자기 결정권을 훼손하는 경우에 재판에서 판단하는 데 하나의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름에서 오는 괴리감

재판은 증거로 하는 것인데 '감수성'이라는 뜬구름 같은 느낌을 주는 용어로 인하여 재판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강한 성이 약한 성을 억압하는 추세로 보이고 이것이 범죄로 실현되는 경우에 재판의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직장 내에 상사가 부하직원을 강제 추행하는 경우인데, 상사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억압한 뒤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경우 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성적인 평등을 위해 여가부를 비롯한 사회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양성이 평등해지면 어느 특정한 성이 강자가 되지 않고, 약육강식처럼 다른 성을 공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원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피해자의 일방적인 말만 가지고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것인가?"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성범죄의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심리할 때 사실관계를 조망해 보면서 진술의 증명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단순히 말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 아닌 앞뒤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범죄 피해가 발생하여 경찰 수사단계와 심리 상담, 검찰 단계, 법원의 재판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변호사가 제출한 반박 자료의 공격과 방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과 구체적인 진술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보다 중점적으로 검토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증거 수집이 쉽지가 않고, 은밀한 곳에서 억압된 상태로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범죄에 비하여 증거 수집이 어려운 부분도 있으므로, 결국 증거 검토의 상당한 부분은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 증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판장은 진술의 신빙성을 중점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진술의 신빙성 중 일관성이 중요한 이유

사례를 보면, 이주 여성과 여동생이 같은 집에 살다가 이주 여성의 남편이 여동생을 강간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즉 형부가 처제를 강간한 경우입니다. 피해 여성은 다문화 복지센터 등에서 통역인을 통해 진술하고, 그 이후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있으며, 이를 토대로 검찰이 기소, 법원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특별한 물증은 없고, 피고인의 알리바이도 애매한 상황이라 재판은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변호사가 반박 증거로 통역인과의 진술을 제출합니다. 통역인과의 진술에서는 피해자는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경찰에서는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을 합니다. 진술이 오락가락하여 재판부에서도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외국인이라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판단하여 구체적인 정황을 진술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였으나, 통역인과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다시 통역인을 불러 법정에서 진술을 들어봅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진술이 틀어지게 되고, 다른 물증도 없고, 피고인은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결국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여성단체와 이주자 모임의 시위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합니다. 성적으로 강자인 남편과 이주자이면서도 여성 약자인 아내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이 피해를 입었는데 법원이 남자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하고 시위를 합니다. 하지만 곧 잠잠해지게 되죠. 과연 판결문과 증거를 제대로 보고 이런 행동을 할지 의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주여성은 여전히 그 남편과 잘 지내며 가정을 유지하고 있고, 여동생도 같이 거주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증거 없으면 결국은 무죄

성적 불평등으로 인한 성인지 감수성과 진술의 신빙성을 토대로 유죄의 재판을 하고 싶지만, 결국 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충분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사실관계를 잘 따져보았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다면 무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여자라서 당했다", "남자라서 유죄다"가 아니라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만 증거가 없으면 무죄입니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 상해가 될까?

사실 여성으로서의 임신은 신체의 변화와 노화를 동반하며, 출산의 고통 또한 굉장합니다. 제왕절개를 한다고 한들 수술을 해야 되는 자체가 상해의 신체적 손상을 동반합니다. 낙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원의 판례는 강간으로 인하여 원치 않는 임신은 상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의학적으로 보건대, 여성이 강간을 당하게 되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임신을 하게 되면 착상 초기에 수정란을 제거하는 간단한 시술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 사건은 여성이 병원에 검사를 받지 않는 등으로 인해 그만 아이가 자라나게 되고, 낙태의 고통을 겪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강간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만일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즉시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위 사건에서는 의붓아버지가 딸을 강간한 사건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의 측면에서도 성적 강자인 의붓아버지, 약자인 딸... 딸의 입장에서는 재혼한 엄마도 생각해야 되고 어린 나이에 심적으로 고통도 상당한 나머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지내다 그만 배가 불러와 사건이 표출되고 경찰에 신고해서 법원에 재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재판부에서는 "임신이 필연적으로 임산부의 건강상태를 나쁘게 변경시키고 생활기능에 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 상해라는 측면에서 "명문의 형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들어 강간으로 인한 임신은 상해가 아니라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형법상 강간치상죄는 강간의 전이나 중간, 후에 피해자를 억압하기 위하여 상해를 입히거나, 강간에 수반해서 신체에 상처를 입게 하는 것을 규정하는데 임신은 강간 이후에 발생하는 결과이므로 쉽사리 확대 해석해서 임신까지 강간치상죄에서의 상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신체적으로 의학적으로 상해인데, 형법 규정상 상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이야 방귀야?"

 

이런 부분이 국민의 법감정(성인지 감수성)과 법률의 괴리가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범죄(강간 등)의 보호 법익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지 "임신할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 논리에 더 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간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임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강간 직후 검사를 통해 착상된 난자를 제거할 수도 있는데(합법적인 낙태 가능)  임신을 형법상 규정된 강간치상죄의 상해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판사라도 명확한 법률이 없는데, 괘씸하다고 임의적으로 없는 법을 만들어서 피고인에게 강간치상죄를 선고할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양형에서 조금 더 중한 형량을 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 강간과 강간으로 인해 발생해버린 임신은 차이를 두어야겠지요. 임신은 여성에게 큰 고통인데 원하지 않는 임신이고 범죄로 인해 발생했다면 그 고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강간으로 인하여 발생한 임신의 결과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중한 피해라는 점에서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부과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 또한 법원의 입장입니다.

 

결국 법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형법의 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법 조항 중 강간치상 등의 조문에 항을 별도로 규정하여 강간으로 수반된 임신의 경우 "치상"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명문 규정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피고인을  더 강하게 처벌하기 위해 복수심으로 임신을 유지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피해회복 보다는 복수심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면 산모도 아기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더 불행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헛점 투성이라고 생각하면서 헛웃음 짓는 상황이 발생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법감정 vs 죄형법정주의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합니다. 좋게도 변화하고 나쁘게도 변화합니다. 범죄도 마찬가지고, 이 범죄를 적시하는 사람의 인식과 태도도 변화합니다. 하지만 법은 느립니다. 특히 입법이 되어야 사법기관에서도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입법은 늘 더디기만 합니다. 국회의 파워 게임과 형법 개정보다 민생 법안이 우선시되고, 예산이 더 급해 보이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에게 투표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투표할 사람들의 관심사 그리고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필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이므로,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 분하고 억울하여도 어찌할 바가 없습니다.

 

현실적인 대안

뻔한 이야기이지만 수사기관의 신고 그리고 병원의 치료가 최우선입니다. 소위 "의붓딸 강간사건"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판례가 있습니다. 재혼한 어머니, 강압적인 의붓아버지 그리고 힘없는 여학생, 이 여학생은 성인이 될 때까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지옥 같은 청소년기를 버텨 성인이 되고 그녀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깁니다. 어느 날 남자 친구에게 중대한 고백을 합니다. "사실 나 그동안 너무 괴로웠어" 그 후 남자 친구는 칼을 들고 의붓아버지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정당방위로 위법성의 조각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당방위는 불성립.

정당방위는 현재의 불법으로 인한 침해를 막기 위해 하는 것인데, 현재 여학생은 강간을 당하는 순간이 아니라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아 남자친구는 형을 살게 됩니다.

 

스스로 임의적으로 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세요.

 

이번 시간에는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강간으로 인해 발생한 임신의 상해여부, 국민의 법감정과 죄형법정주의의 괴리, 의붓딸 강간사건을 통해서 본 정당방위 성립 여부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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